11화 목소리 없는 약자, 동물과의 동행을 바탕으로, 도심에서 급증하는 로드킬의 원인과 해법을 다각도로 짚어본다.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과 도로망의 거미줄 같은 확장은 야생동물의 이동을 차단하고, 매일 수백 마리의 생명을 빼앗는 도시형 재난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한 실효적 해답으로 떠오른 생태통로, 그리고 서울형 녹지연결로의 설계 철학과 성과를 통해 사람과 동물이 함께 안전하게 이동하는 도시의 길을 모색한다.생태통로의 필요성과 로드킬의 진실
도시가 팽창할수록 자연은 칸막이처럼 잘게 쪼개지고, 도로는 야생동물에게 거대한 장벽으로 변모한다. 아스팔트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동물들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 이동하다가 차에 부딪힌다. 통계는 냉혹하다. 2019년 약 2만 1,000건이던 로드킬이 2023년 7만 9,000건으로 폭증해, 사실상 하루 평균 200여 마리가 도로에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이 비극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서식지 단절로 인한 생태계 붕괴의 겉면에 불과하다.로드킬이 늘어나는 구조적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도로가 산과 숲을 관통하며 서식지를 조각낸다. 둘째, 봉우리 사이·계곡 사이의 연결이 끊기며 동물은 고립된 ‘섬’에 갇힌다. 셋째, 고립은 근친교배와 유전자 다양성의 저하로 이어져 개체군 전체의 건강성을 약화시키고, 결국 생태계의 회복력을 바닥나게 만든다. 그러므로 로드킬은 이동 경로를 되살려 달라는 생태계의 비상 신호다.
해법은 ‘생태통로’다. 하버드의 리처드 포먼 교수가 정립한 이 개념은, 도로·댐·도시개발로 단절된 서식지를 육교(그린브리지), 터널(언더패스), 또는 식생 회복지로 다시 연결해 동물의 안전한 이동과 유전적 교류를 보장한다. 중요한 점은 형식보다 맥락이다. 어느 지점을 어떤 폭과 식생으로 연결해야 하는지, 어느 종이 언제·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정교하게 읽어내야 성과가 난다. 서울로 눈을 돌리면, 남산·인왕산·관악산 같은 핵심 서식지 사이에는 강변북로·남부순환로·장충단로 등이 장벽으로 가로선다. 이 장벽을 넘어서는 구조적 통로가 구축될 때 비로소 도시는 조각난 초록에서 이어진 녹지축으로 진화한다. 다층식재, 소음·빛 차단, 포식자-피식자 동선 분리 같은 세밀한 설계는 통로의 이용률을 가파르게 끌어올리는 결정적 요소다. 요컨대, 생태통로는 동물 복지라는 단일 목적을 넘어, 도시 전체의 생명 순환을 재가동하는 인프라에 가깝다.
서울 모델: 시민과 자연을 잇는 전략
서울형 녹지연결로는 세계 곳곳의 야생동물 전용 통로를 벤치마킹하되, ‘사람과 동물의 공존’을 전제로 한 혼합형 모델로 차별화된다. 폭 10~20m의 교량 위에 보행로(약 2m)와 동물 이동로(최소 7m)를 병치하고, 울타리와 다층 수목으로 두 동선을 확연히 분리한다. 이 설계는 등산객의 무단 진입을 원천 차단하면서도, 도로로 끊겼던 서울둘레길·등산로·공원 산책로를 연속적으로 이어 시민의 이용 편익을 비약적으로 높인다. 동시에 그늘·바람길·토양 수분 순환이 회복되며 열섬 완화, 미세먼지 저감, 생물다양성 증진 같은 생태계 서비스가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간다.구체적 성과도 축적 중이다. 2024년 9월 준공된 동작구 ‘국사봉 녹지연결로’는 양녕로로 쪼개졌던 숲을 다시 엮어, 시민에게는 안전한 산책로를, 동물에게는 방해받지 않는 이동로를 제공한다. 강동구 ‘샘터길 녹지연결로’는 낡은 3m 육교를 15m 폭의 혼합형 연결로로 재탄생시켜 일자산과 방죽공원을 유기적으로 묶었다. 이 두 프로젝트는 도심부에서도 충분한 폭과 식생을 확보하면 생태적 연결성과 시민 만족도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 차원의 이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열섬 완화: 연속된 초록은 바람길을 만들고, 증산작용으로 체감온도를 낮춘다.
• 대기질 개선: 잎과 토양이 미세먼지·오염물질을 흡착·분해한다.
• 수변·토양 회복: 도로 절개로 교란된 토양 구조를 복원해 빗물 순환을 정상화한다.
• 안전 증진: 동물-차량 충돌을 줄여 운전자·보행자 안전을 동시 확보한다.
• 레크리에이션 가치: 둘레길·공원·등산로를 다이내믹하게 연결해 생활권 여가의 질을 끌어올린다.
결국 서울형 모델은 ‘생태 인프라’와 ‘생활 인프라’를 한 다리 위에서 정교하게 접합한 도시 설계 전략이다. 장기적으로는 녹지축 네트워크를 남산-관악산-우면산-청계산으로 확장하고, 강변북로·올림픽대로의 상부녹화와 연계할 때 생태-교통-경관이 함께 개선되는 시너지가 본격화한다.
녹지연결로가 바꾸는 일상과 회복탄력성
생태통로의 실효성은 국내외 데이터가 다진다. 지리산 ‘시암재 생태통로’에서는 5년간 548마리의 야생동물이 포착됐고, 멸종위기종 Ⅰ급 반달가슴곰과 Ⅱ급 삵·담비 등 최상위 포식자들도 꾸준히 관찰됐다. 더 주목할 점은 이용 빈도의 가파른 증가다. 국립공원 12개 통로 분석 결과, 2012년 통로당 평균 163회였던 이용 횟수는 2016년 505회로 3.1배 뛰었다. 동물들이 안전한 길을 학습해 세대 간에 전승한다는 뜻이며,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통로의 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짐을 시사한다.서울에서도 같은 메커니즘이 기대된다. 충분한 폭·식생·차폐를 갖춘 연결로는 도시 소음과 빛 공해를 차단해 동물의 경계심을 낮추고, 포식자·피식자 동선을 나누면 상호 스트레스를 줄여 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 차량과의 충돌 위험이 줄어들면 운전자의 불의의 사고·수리비 부담도 동시에 완화된다. 시민은 더 길어진 산책 동선, 다채로운 숲 경관, 계절 따라 달라지는 식물상과 조우하며 삶의 질을 일상적으로 체감한다.
시민 참여는 성패를 가르는 열쇠다. 다음 실천을 권한다.
• 울타리 준수: 동물 이동로에 진입하지 않고, 반려견은 반드시 목줄·짧은 리드 사용.
• 속도 관리: 연결로 인접 구간 감속, 야간 운전 시 전방주시 강화.
• 신고·관찰: 로드킬 발견 시 관할 기관에 즉시 신고, 시민과학 플랫폼에 관찰 기록 공유.
• 쓰레기 제로: 먹이되기 쉬운 폐기물 반출 금지, 산책 시 되가져오기 원칙 준수.
• 정책 지지: 예산·노선 확대를 위한 공론에 참여하고, 생활권 연결로 설치를 요구.
이러한 생활 속 동참은 생태통로의 이용 안전을 높이는 동시에, 도시의 회복탄력성을 촘촘히 강화한다. 궁극적으로 녹지연결로는 도심을 관통하는 푸른 혈관이자, 목소리 없는 약자에게 건네는 가장 실질적인 연대의 다리가 된다. 결론 로드킬의 급증은 도시화가 만든 서식지 단절의 경고등이며, 그 해법은 과학적으로 설계된 생태통로와 서울형 녹지연결로의 촘촘한 네트워크다. 폭과 식생, 동선 분리, 차폐 설계를 정밀하게 구현하면 동물의 안전한 이동과 유전적 교류가 복원되고, 시민의 보행 편의·열섬 완화·대기질 개선이라는 다층적 이익이 동시에 실현된다. 국사봉과 샘터길 사례, 지리산의 장기 모니터링 성과는 통로의 학습 효과와 실효성을 명징하게 입증한다. 다음 단계로, 지자체는 녹지축 마스터플랜을 공개하고 핵심 단절 구간을 우선 연결해야 한다. 시민은 울타리 준수·감속 운전·신고·관찰 참여로 현장의 완성도를 높이고, 생활권 연결로 확충을 위한 공론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보태자. 그렇게 서울 전역에 ‘사람과 동물이 함께 이동하는 길’을 촘촘히 놓을 때, 도시는 비로소 지속가능한 동행의 품격을 갖추게 된다.

